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윙드 후사르 (문단 편집) == 특징 == [[파일:CZKkxE7.jpg]] 이들의 특징인 [[등(신체)|등]]에 달린 [[날개]] 장식은 [[몽골 제국]]이 [[유럽]]을 침공할 때, [[몽골 제국군]]이 후사르한테 그물을 던져 낙마시키자 뒤에 철조각들을 날개처럼 붙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혹은 [[오스만 제국]]의 경기병 아큰즈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큰즈는 [[등(신체)|등]]에 [[독수리]] [[깃털]]을 단 장식을 차고 다닌다고 한다.] 혹은 날개들이 돌진할 때 깃털이 [[진동]]하면서 위압적인 소리를 낸다고 하는 설도 있다. 그 뒤로도 저 날개 장식이 그냥 장식인지, 아니면 실용성이 있었는지 여러 가지 의견이 많다. 군사 서적 전문 출판사 [[오스프리(출판사)|오스프리]]에서 펴낸 폴란드 후사르 관련 서적에서는 실험을 수 차례 했어도 올가미에 낚이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도 소용이 없고, 전속력으로 돌격해도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오스프리의 서적에 따르면 축제나, 예식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왜냐면 문에 들어갈 때나 나무 사이로 지나갈 때 저 날개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었기 때문.] 그 외에도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 붙였다는 추정도 있다. [[사람]]보다 덩치가 큰 [[기병|물체]]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는 데다가 [[등(신체)|등]] 뒤에 덩치를 더 크게 보이게 만드는 [[날개]] 장식까지 붙였으니 그 위압감은 실로 충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깨]]에 [[표범]]이나 [[호랑이]] [[모피]]를[*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카프카스]] 혹은 [[중동]]산을 수입한 것이라고 추정 하고 있다.] [[망토]]처럼 걸치기도 했다. 이것 역시 [[날개]] 장식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장신구 역할과 동시에 혼란을 주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추측 외에도 상징적인 면에서 이 [[날개]] 장식의 용도를 추측하는 설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윙드 후사르가 착용하는 날개 장식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상징에 대입된다. 본래 우리가 폴란드라고 부르는 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던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연합해 생겨난 국가인데, 본래 폴란드의 상징은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상징은 '''말을 달려나가는 [[기사(역사)|기사]]'''[* 이 기사를 비티스(Vytis)라고 부르는데 현대 [[리투아니아]]의 [[문장(그림)|문장]]에도 등장한다. [[벨라루스]] 독립 초창기 벨라루스에서도 사용했으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집권하면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였다. 즉, 이 '날개 장식+[[기병]]'이란 조합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함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다. 사실 저렇게 완전무장하고 두터운 모습이지만 원래 [[후사르]]는 '''경'''기병이었고 윙드 후사르도 원래 경기병에서 출발했다. 이들이 무장한 장비로는 앞서 사진에 나온 갑옷과 투구, 앞서 언급한 속이 빈 5 m짜리 랜스와 [[기병도]] '샤블라', [[에스터크]] 등으로 무장했고, 지휘관이나 귀족병사들은 샤블라 대신 철퇴나 도끼로 무장하기도 했다. 그 외에 일부는 권총이나 아퀘부스 같은 화기도 종종 갖추었다. 또한 초기에는 방패를 사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쓰지 않게 되었다. 다만 윙드 후사르의 전과가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파이크병을 상대로 몇번 승리를 거둔 적은 있으나(키르홀름 전투와 클루시노 전투) '''제대로 된''' 파이크 방진을 격파한 적은 별로 없다. 스웨덴의 파이크 병은 1601년 군제 개혁하려고 데려온 요한 반 나사우에게 '''파이크 쓸 줄도 모르는 양민 수준'''이란 평가를 들었을 정도로 형편없는 군대였다. 요한 반 나사우는 군제개혁 하겠다고 스웨덴군 좀 만지작 거리다가 돌아가버렸고, 이 파이크 방진은 고작 4년 후에 키르홀름에 투입되었다가 윙드 후사르의 기동에 반응도 못해보고 박살나버렸다. 또한 키르홀름 전투처럼 기병만으로 파이크 방진을 돌파하는 사례는 폴란드 내에서도 '''이례적인 경우'''인 것 같고, 후사르들 피해가 적지 않았다. 클루쉬노 전투는 그래도 좋은 성과를 냈는데, 루스 차르국 3만군과 스웨덴 5천군(이 연합군은 파이크병, 머스킷티어, 화승총병-아쿼버시어로 구성 됨)을 5천여 기병으로 돌격해서 대승을 거두었다. 물론 전투 초반에 윙드 후사르가 보병 방진에 돌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돌진 횟수는 알 수 없고 사견에 따라 다름) 전열을 제대로 무너뜨리지 못해서 초반에 고전한 건 사실이다. 또 러시아군이 무너진 이유로 반격에 나선 러시아 기병들이 대삽질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사르 기병이 클루시노 전투에서 주력군으로 활약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근거는 당시 폴란드군 6500 ~ 6800명 중 후사르 비율이 최소 80%, 대략 5500명이었고, 기병이 아닌 타 병과는 규모가 매우 작고 지원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또 이 전투에서 제대로 싸웠다고 나오는 보병은 왼쪽에 배치된 보병 400여 명, 나중에 지원 온 보병 200여 명 정도였고 대포는 2문 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 대포 2문도 나중에 온 보병 200명과 함께 늦게 왔던 터라 초반 전투에는 아예 쓰이질 못했다. 여기에 전황을 다 나열할 순 없겠지만, 결론적으로 이 전투는 후사르 기병을 앞세워 파이크병을 포함한 적군을 제대로 격파한 몇 안 되는 사례이다.[* 당시 전황은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Klushino|이 링크]]에 전부 나오기에 생략함. 참고로 적군 대포는 훨씬 많은 11문. 물론 적군이 대포 활용을 거의 못해서 큰 의미는 없었지만, 요점은 클루시노 전투는 대포로 제압한 전투도 아니었고. 기병 전력을 앞세워 승리한 전투가 명백하다는 것.] 어찌되었던 후사르가 [[먼치킨(클리셰)|먼치킨]]이라고 평가받는 한 가지 이유인, '''제대로 된 파이크 방진을 상대해서 격파'''했다는 기록은 생각보다 적고 어느 정도 과장이 들어간 것이 맞다. 중무장 갑옷을 뚫는 총기가 보편화 되기 전까진 기병 돌격을 그나마 저지 해볼만한 수단은 보병의 장창 방진 뿐이었고, 그래서 테르시오라는 전술이 이름을 떨친 것인데 정작 후사르는 파이크 방진을 정면돌격으로 깨부순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 애초에 동유럽은 서유럽과 달리 평원과 스텝 지대가 널리 펼쳐져 있어 보병보다는 기병에 투자하는 성향이 강했기에, 그 기병 중 가장 중무장한 윙드 후사르가 활약할 여지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보병들의 질은 서유럽에 비해 극히 떨어졌고, 그나마 서유럽을 따라하던 스웨덴도 초창기에는 그 수준이 확연히 떨어졌다. 반면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개혁으로 이전까지 서유럽을 모방하기 급급했던 후발주자에서 아예 서유럽을 포함한 유럽식 군제의 원조로 떠오른 전성기의 [[스웨덴군]]에게는 확연히 고전했다. 즉, 윙드 후사르 역시 제대로 된 근대식 군대에게는 큰 전과를 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윙드 후사르에 대한 군사적 평가가 과장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윙드 후사르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폴란드 창기병 [[울란]]이 그 전투력을 높이 평가받아 동시대 전 유럽에 보급된 반면, 윙드 후사르가 활약하던 시대에 윙드 후사르와 같은 랜스를 차용하여 이를 모방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돌격기병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한 기점인 스웨덴의 [[하카펠리타트]]도 검과 총을 썼지 랜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윙드 후사르는 강력했지만, 시대의 흐름과 그다지 맞아떨어지는 병과는 아니었던 셈. 이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다시 기병돌격의 장점이 재평가되면서 창기병이 부활하게 된다. 또한 이후의 기병들이 랜스를 사용하지 않은것은 기병 자체의 패러다임이 바뀐 점이 크다. 당시 재정비된 기병돌격은 이제 막 생겨나는 [[전열보병]] 앞에서 정면돌격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고, 이는 기병이 전장의 주력이 아닌 부가적인 역할을 하는 보조병과로 전환되도록 만들었다. 이후의 기병 돌격 또한 기병도를 사용해 측면이나 후면에서 공격해 방진을 흐트려 놓는것으로 바뀌었고, 기동성을 저지하는 지나치게 긴 랜스는 불필요해졌기 때문. 또한 위에서 비교된 스웨덴의 하카펠리타트가, 다시금 기병돌격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례긴 했지만, 정작 하카펠리타트는 '''검기병'''이었다. 랜스를 사용하던 윙드 후사르와 검과 피스톨을 사용하던 하카펠리타트를 동일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하카펠이 돌격전을 벌였다고 하지만, 랜스는 장비하지 않았고 검만 들고 싸웠다. 또 다른 근세의 상징인 [[테르시오]]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레 쇠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